당신이 길을 걷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저녁에 술집 테이블 옆자리에서나…
한 번쯤은 봤으나 기억은 안 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중소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이다.
살아가다 보니 직장 생활을 해 온 지도 거의 20년이 되어가고 있고 평사원으로는 정점에 도달하고 있는 그런 나이다.
다시 말해, 직장 생활을 할 날 보다 해온 날이 더 많은 나이인 것이며, 직장 생활이 앞으로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들여다보면, 돈을 벌어야 하는 시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카운트다운하고 있는 나이인 것이다.
잠깐! 대출받아서 이제 겨우 차 한 대 굴리고 아파트는 아니지만 수도권에 집 한 채 가지고 있는데 벌써 돈 벌 날이 얼마 안 남았다니!
뭐 그런 것이다. 나만 그럴까? 대부분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을 비슷한 나이 대의 직장 동료와 담배를 한대 태우며,
“잘리면 배달이라도 가야 하나?” 하며, 부실한 하체를 한번 쓱 훑어보며 웃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실없는 소리인 말 한마디가 조용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은퇴가 가까운 거래처 형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던졌다.
“직장을 다녀봤자 얼마나 다니겠어? 미리미리 제 2의 인생 준비를 해야지.
나도 늦게 시작했지만 벌써 박사를 준비하고 있다.
너는 석박사를 하게 되면 50대 초반이기 때문에 아직 늦지 않았다. 더 고민하지 말고 대학원에 들어가라.”
“형님! 대학원이요? 40대 중반에?”
“거기 가 보면 넌 어린 축에 속해, 그렇게 살다가 퇴직하면 한 방에 훅 간다. 내가 가는 길은 50대 이후부터 유리하기 때문에 너도 잘 따라오면 된다.”
평소 같으면 뭔 실없는 소리냐며 웃고 넘겼겠지만, 그날 따라 ‘대학원’이란 말이 무거운 추가 달린 것처럼 내 마음속에 가라앉아 떠나질 않았다.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얼마 안 남은 직장 생활 어영부영 지내다 퇴직하면 몇 년간 더 작은 회사 기웃기웃하다가 그간 모은 돈으로 준비 없이 자영업 하다가 한강에서 소주 나발을 불고 있을 미래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가보자!
2023년 12월 말. 나는 갑자기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